세대분리 1년만에 청약 당첨…미친 집값이 만든 230만 K싱글

특별취재팀 2021.05.10 09:12

[싱글즈]② 싱글세대 900만…집 때문에 '한 지붕 두 세대' 된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A씨(60·여)는 2년 전 아들(34)을 독립시켰다. A씨는 “남편과 딸까지 네 식구가 무주택으로 살아왔는데 결혼을 앞둔 아들이 집을 사겠다며 먼저 세대분리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 모두가 일을 하는데 소득합산 때문인지 그동안 분양·청약을 숱하게 넣어도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아들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아들은 세대분리 1년 만에 신혼부부 자격으로 행복주택에 당첨돼 지난해 입주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신혼부부, 청년 등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이다. 입주자격은 청년의 경우 만 19~39세 미혼 무주택자이면서 5년 이하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는 결혼 7년 이내 무주택 세대구성원이다.

이들이 속한 세대 월평균 소득 합계가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원수별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00% 이하라는 소득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A씨는 “집이 뭔지 자식들과 같이 살고 싶었지만 같이 사니 손해더라”며 “아들이 연애를 오래하고도 집 문제로 결혼을 못했는데 요즘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것을 보면서 딸도 독립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1인세대 900만 시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국내에서 ‘1인세대’ 시대가 가속화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집 문제가 꼽히고 있다. 수도권의 집값 폭등 여파로 아파트 청약 등을 위해 ‘한 지붕 두 세대’의 세대분화를 택하는 집들이 급증해서다. 그래서인지 2019년 현재 수치상 ‘1인세대’는 실제 혼자서 사는 사람을 뜻하는 ‘1인가구’보다 234만명 정도 많다.

1인세대 증가세가 20·30대에서 두드러지는 것 또한 결혼이나 독립 등을 앞두고 먼저 세대분화를 하는 세태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6년 90만8713세대이던 20대 1인세대는 2020년 136만4686세대로 50.1%(45만5973명) 늘었다. 20대는 전체 1인세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12.2% 수준에서 2020년엔 15.1%까지 불어났다. 30대 1인세대도 2016년 126만8814세대에서 2020년 146만8243세대로 15.7%(19만9429명) 늘었다.
 
집 문제와 관련한 세대분리 추세는 민원제기 부분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행안부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전입신고와 관련된 민원 167건 가운데 세대분리와 관련된 민원은 55%(92건)에 달했다. 세대분리를 요청하게 된 이유로는 '주택청약'이 92%를 차지했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직장·교육 등을 이유로 독립세대를 이루는 젊은층이 늘어난 데다 최근 부동산 문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세대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1인 세대 배경엔 '집' 문제



2030 세대의 집에 대한 열망은 통계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매입자 가운데 30대 이하 비율은 44.7%로 2년 전(29.1%)보다 15.6%포인트 높아졌다. 한국은행 역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30대의 주택매매거래량이 크게 늘었으며 대출 비중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다고 분석했다. 영혼을 끌어 모아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이른바 ‘영끌’ 현상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집값 상승과 주택난으로 영끌하는 젊은층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세대 분리를 하고, 무주택이라는 청약 자격이 세대 분할을 촉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아파트 매입자 중 30대 이하 비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세대 1주택자를 우선으로 한 부동산 정책 역시 1인세대 증가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무주택 세대주에게는 공공주택 청약 자격이 주어지고 민간분양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집값이 계속 오르다 보니 다주택자가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등의 중과를 피하기 위해 세대분리 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자녀가 만 30세 이상이거나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익이 있거나 결혼해 독립세대를 구성하면 세대 분리를 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된 지난해부터 세대분리를 상담하는 자산가들도 부쩍 늘고 있다. 금융교육 컨설팅 회사 웰스에듀의 조재영 부사장은 서울 서초구 아파트에서 아들(35)과 함께 20년 넘게 사는 김모(71)씨 부자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김씨 부자는 얼마 전 아들이 송파구에 아파트를 사면서 각각 20억원, 9억원의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이 경우 김씨는 6억원을 공제받아 14억원에 대해, 아들 역시 6억원을 공제받아 3억원에 대한 종부세를 각각 납부해야 해서다.

하지만 아들이 세대분리를 할 경우 각자 1세대 1주택자가 돼 세금이 확 줄어든다. 김씨는 70세 이상인 데다 20년 이상 주택을 장기보유해 1세대 1주택자 혜택인 9억원 공제 외에도 최대 80%까지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이른바 ‘내 집’과 ‘내 공간’을 원하는 젊은층이 늘어난 것도 1인세대 증가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KB경영연구소의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에는 주로 직장·학교 등의 이유로 1인 생활을 시작했지만 지난해는 자발적으로 독립생활을 선택했다고 한 응답자가 더 많았다. 1인 생활을 시작한 이유로는 ‘혼자 사는 게 편해서’라는 답변 비율이 36.6%로 가장 높았다. 


 

▲ 점점 늘어나는 20·30대 1인 세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달라지는 '주거 선호' 경향



집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선호하는 주거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박성민 다방 사업마케팅본부 총괄이사는 “스세권(스타벅스 인근 지역), 맥세권(맥도날드 인근 지역) 같은 신조어가 생길 만큼 집은 물론 주변 환경에도 관심이 많다”며 “유튜버 같은 고소득 1인 세대가 늘면서 고가 월세나 3·6개월 단기 임대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26㎡(8평) 월셋집에서 살던 직장인 박모(27·서울 영등포구)씨는 두달 전 43㎡(13평)짜리 오피스텔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전세 보증금의 80%를 대출받긴 했지만, 집 상태가 깨끗하고 경비원이 있는 곳을 선택했다. 박씨는 “잠만 자는 공간이어도 집 환경에 따라 기분이 우울해지기도 해 절약보다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라 재택근무가 늘어난 것도 주거형태 변화에 영향을 줬다. 박씨는 “이전 원룸에는 책상이 없었는데 새로 이사온 집은 책상과 의자가 있는 데다 침실과 거실도 나뉘어 있다”고 했다. 
 
박씨는 또 “전·월세 대출 지원 등 정부나 지자체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다고들 하는데 안정적으로 집을 사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잠시 거쳐 가고 현재에 안주하게 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며 “아직 결혼 계획이 없는데도 ‘내 집은 갖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최근 1인세대를 위한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좀 더 좋은 입지에 내 집을 마련하고 싶어하는 1인세대의 욕구를 충족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혼자지만 아파트는 갖고 싶어’의 저자 한정연 경제전문작가는 “청약가점제는 1인세대와는 상관없는 제도로 보는 것이 나을 정도로 혜택이 없으며, 혼자 사는 세대는 부동산 절세도 어렵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내 집 마련 욕구가 있으며, 이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가령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어야 신청 가능한 생애최초 특별공급은 공공주택 사전청약 물량의 25% 수준인데, 적어도 이 가운데 5%는 싱글이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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