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누가 되든 ‘문 정부 부동산 판’ 흔들린다

황정일 기자 2021.04.05 09:21

당신의 삶을 바꾸는 서울시장?

규제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위기를 맞았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문 정부가 깔아 놓은 부동산 판이 깨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은 문 정부의 부동산 판을 뒤흔들 만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야당 오세훈 후보는 물론, 여당 박영선 후보마저 정부와 방향이 다른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 시장에선 “곧이어 대선이 이어지므로 서울시장이 누가 되든 대통령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동산 정책 기조가 바뀔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사실상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심판으로 흐르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9~30일 서울시민 10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서울시장의 중점 현안’으로 ‘부동산시장 안정’(37.9%)이 첫손에 꼽혔다.

그러다 보니 여야 할 것 없이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결이 다른 공약을 내놓고 있다. 우선 누가 되든 향후 부동산 세금이 현재 예상보단 줄 것 같다. 박 후보는 공시가격 인상 폭 제한을 약속했고, 오 후보는 재산세 감면을 예고했다.  
 


 
박 후보가 제안한 공시가격 인상 폭 제한은 정부와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윤성원 국토부 제1차관은 1일 “내년에는 공시가 6억원 넘는 주택이 더 늘어날 것이고 그에 대한 세제 측면의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정부가 1주택자의 재산세 감면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오 후보는 재산세 50%를 환급한 서초구처럼 재산세를 감면하겠다는 구상이다.

무소득 1주택자는 아예 면제를 약속했다. 재산세 감면은 시 조례를 바꾸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주택 보유자를 옥죄기 위한 보유세(재산·종부세) 인상 계획은 틀어질 수 있다. 서울시의 재산세 감면 움직임은 수도권과 지방 주요 도시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서울에서의 주택 공급은 확 늘어날 것 같다. 두 후보는 35층 층수 규제 등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다만 박 후보는 층수 규제 완화와 관련 ‘남산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오 후보는 일률적인 층수 규제 폐지와 용적률 상향을 약속했다. 주택 공급 방식에서도 정부와 차이가 분명하다. 박 후보는 민간이 일부 참여하는 재개발·재건축을 약속했고, 오 후보는 사업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민간 주도 재개발·재건축을 밀고 있다.  
 
서울시장 권한으로 가능한 일인데, 어떤 식으로든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민간이 참여하게 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주도’ 주택 공급 대책은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선 차이가 있지만 두 후보가 규제 완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만큼 재개발·재건축사업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의 규제 완화 공약은 현실화할 가능성도 크다. 부동산 정책의 큰 줄기는 기획재정부(세제)·금융위원회(대출)·국토교통부(규제지역 등)가 법과 시행령을 통해 만들지만, 이를 시행하는 정책의 세부 사항은 지자체가 조례·지침 등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은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현재 추진 중인 역세권개발사업의 사업 범위를 설정하거나 35층인 아파트 층수 규제를 풀 수 있다.  
 
또 주요 개발 사업의 인·허가권을 갖고 있어 사업의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재개발·재건축사업은 직접적인 규제 완화도 가능하지만,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게만 해줘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이가 서울시장”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은 용도지역·지구 변경을 통해 재개발·재건축사업의 채산성을 높일 수 있는 용적률도 변경할 수 있다. 재산세를 50% 환급한 서초구처럼 재산세와 같은 지방세 감면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시장뿐 아니라 광역단체장이 공통으로 가진 권한이지만 부동산시장에서 서울이 차지하는 위상 때문에 권한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서울시장의 권한이 국토부 등 정부를 뛰어넘는 건 아니다.  
 
서울시장이 세울 수 있는 정책의 세부 계획은 법과 시행령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고, 법이나 시행령을 바꿀 수 있는 건 정부나 국회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을 만들면 이를 실행하는 곳이 자치단체”라며 “중앙 부처와 자치단체는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이지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요 부동산 대책 발표 때 종종 서울시 등 광역단체 관계자가 배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토부가 발표하는 주요 보도자료에는 국토부 실무자와 함께 해당 광역단체의 실무자 이름도 들어간다.

난달 14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재개발 후보지 명단도 국토부와 서울시가 함께 결정해 공개했다. 이 지역의 투기를 막기 위한 주요 조치도 곧 서울시 고시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정부로선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이 가진 세부 계획 설정 권한이 때에 따라선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 수 있는 비토권(거부권)이 될 수 있다는 게 부담이다.

박 전 시장도 재개발·재건축사업을 틀어막으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 정부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을 통해 도심 내 주택 공급을 늘리려고 했지만, 박 전 시장이 이른바 ‘35층 룰(35층 층수 규제)’을 만들어 무력화했다. 박 전 시장이 시장 직권으로 해제한 재개발·재건축사업장만 170여 곳에 이른다. 문 정부 들어서는 그린벨트 해제를 끝까지 반대하거나, 정부 반대에도 ‘여의도·용산 통개발’을 시도하기도 했다.

서울시장의 비토권 행사는 정부나 국회가 법이나 시행령을 고치거나, 서울시의회가 조례 개정 등에 협조하지 않는 방식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내년 초 대통령 선거, 6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게 부담이다. 여당이 국회·시의회 의석수만 믿고 무리하게 법을 고치거나 시장의 힘을 빼려 한다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 의석 109석 중 101석이 더불어민주당이다.

여당이 뒤늦게 부동산 정책 실패를 사과하고, 규제 완화 카드까지 꺼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를 공식 사과하면서 ‘50년 만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국가보증제’ 카드를 꺼냈다. 전날에는 홍익표 정책위의장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무주택자에게 총부채상환비율(DTI)·주택담보대출비율(LTV) 우대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규제가 풀리면 부동산시장은 안정을 찾을까. 우선 여야 서울시장 후보가 공급 확대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집값 안정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소장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재개한다면 도심에서 꾸준히 주택을 공급한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규제 완화 기대감에 단기적으로는 집값이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미 압구정·여의도 재건축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12차 전용 110㎡는 지난달 23일 30억원에 거래됐다. 직전 거래인 지난해 12월(29억원)보다 1억원 오른 가격이다.
 
같은 동 현대1차 아파트 전용 196㎡도 지난달 15일 63억원에 팔렸다. 직전 최고가격(51억5000만원)보다 11억5000만원 뛴 신고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도 도심에서 주택 공급 확대를 추진 중인 데다, 보궐선거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재건축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선거는 일회성 이벤트라는 점을 감안할 때 큰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며 “규제를 일부 풀어도 여전히 무서운 시어머니(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재건축사업도 당장 속도를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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